담담함 속에서 한의 정서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식민지 시대를 다룬 이야기임에도
그 시대를 참담하거나 암울하게만 그려내지 않고,
오히려 서정적이고 잔잔하게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다.
“사람들은 그 소설을 또한 대단히 엄숙하게, 그리고 어떤 때는 높은 목소리로, 또 어떤 때는 낮은 목소리로, 어떤 때는 그지없이 명랑하게, 또 어떤 때는 대단히 우울하게, 반은 노래하듯이 낭독했다…(중략)…나는 자주 그런 집 앞에 걸음을 멈추어 서서 귀를 기울이곤 했는데, 그것은 그 이야기가 어떻게 진전되는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목소리가 우리나라에 아직도 평화가 깃들어 있던 나의 걱정 없던 유년 시절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단지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p.130)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난 사람에게는 평범했던 어린 시절의
풍경과 목소리마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문장을 읽으며,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그리워해야 할 기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 더 마음에 와닿았다.
3·1운동에 가담한 뒤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평생 그리워했을 고향,
그리고 타국에서 전해 들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
담담한 문장 속에 그리움과 상실감으로 스며들어 더 크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 책은 그 시대 사람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잃어버린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오래도록 회자되어야 할 소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