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와 함께 서머싯 몸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1930년대 유럽을 배경으로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한 젊은이의 구도적 여정을 그린다. 날카로운 면도날을 넘어서는 것처럼 고되고 험난한 구도의 길을 선택한 한 젊은이를 통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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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내용 요약
《면도날》은 서머싯 몸이 1944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한 젊은이의 구도적 여정을 그린다. 📖 1930년대 미국과 유럽을 배경으로, 주인공 래리 대럴의 내면적 탐구와 주변 인물들의 대조적인 삶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제목은 카타 우파니샤드의 “구원의 길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는 구절에서 따왔으며, 이는 래리의 험난한 여정을 상징한다. 서머싯 몸이 직접 서술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전하며, 그의 간결하고 유머러스한 문체가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풀어낸
“날카로운 면도날의 날을 넘기는 어렵다. 그와 같이 현자는 구원의 길도 어렵다고 말한다.”
우파니샤드에서 가져온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래리 한 사람의 구도 여정을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다. 전쟁 이후 삶의 의미를 잃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길에서 벗어나 답을 찾아 떠도는 한 사람의 이야기.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다시 이 문장으로 돌아오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 소설에서 면도날 위를 걷고 있는 사람은 래리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저마다 자기만의 날 위에 서 있었다.
래리는 전쟁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안정된 직업과 약혼, 사교계와 부유한 생활처럼 이미 준비되어 있던 미래를 두고 유럽과 인도를 떠돈다. 삶은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정말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다. 그래서 래리의 여정만 놓고 보면 ‘면도날’은 세속과 초월 사이의 좁고 위태로운 경계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이자벨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자벨은 래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원하는 삶까지 함께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래리와 함께한다는 건 자신이 익숙하게 누리던 안락함과 풍요, 사회적 지위와 미래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이자벨은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런 선택이 속물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사람은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가기 위해 자신이 원하던 삶의 모습까지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정말 자신에게 진실한 선택일까.
이자벨에게도 분명 자기만의 면도날이 있었다. 사랑과 안정, 진심과 욕망 사이에 놓인 아주 좁은 경계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위에서 오래 흔들리다가 결국 안정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래리가 정신적인 면도날 위를 걸었다면, 이자벨은 감정적인 면도날 위를 걸었던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른 인물들의 삶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레이는 사업 실패 이후 무너진 현실과 자신이 지켜온 자존심 사이에서 버티고, 소피는 견디기 힘든 상실과 자기 파괴 사이에서 계속 흔들린다. 그들의 삶은 래리의 구도만큼 거창하거나 숭고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그들에게 그 경계가 덜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말하는 ‘면도날’을 꼭 깨달음에 이르는 길로만 읽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계속 자기만의 면도날 위에 올라선다. 소유와 자유 사이에서, 안정과 진심 사이에서, 체면과 욕망 사이에서, 사랑과 자존심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면 편해질 것 같으면서도, 우리는 이상할 만큼 그 경계 위에서 오래 망설인다.
래리의 면도날만 유난히 특별해 보이는 건 그것이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직업을 버리고 인도로 떠나는 일이 면도날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주는 일이 그보다 더 어렵고 날카로운 길일 수도 있다.
서술자로 등장하는 서머싯 몸의 위치도 흥미로웠다. 그는 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 어떤 삶이 옳다고 말하지도 않고, 누구의 선택을 대신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나는 이 거리감이 이 소설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면도날 위에 실제로 서 있는 사람은 당장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밑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길 위에 있는지, 왜 흔들리고 있는지조차 그 순간에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 위태로움을 더 잘 알아보는 건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몸은 그래서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날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리고 어쩌면 소설을 읽는 일도 비슷한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경계 위에 서 있는지를 잠깐 돌아보게 하는 것.
책을 덮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내가 지금 어떤 면도날 위에 서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갈림길이라고 말한다. 이 길이냐 저 길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의 삶은 그렇게 넓고 분명한 두 갈래 길보다는 면도날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채로, 조금만 기울어도 다른 무언가를 잃게 되는 좁은 경계.
안정을 택하면 진심을 버린 것 같고, 진심을 따라가면 삶의 기반을 잃을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자유를 조금 내어주어야 하고, 자유를 지키려 하면 때로 누군가를 놓쳐야 한다. 결국 우리는 하나를 선택하면서 동시에 다른 하나의 일부를 잃어가며 살아간다.
래리처럼 그 날을 끝까지 건너 자기만의 답에 도달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닿지 못한 채 계속 흔들리고, 때로는 뒤로 물러나고, 가끔은 발을 베이면서도 다시 걷는다.
예전에는 그런 흔들림을 우유부단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면도날>을 읽고 나서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어쩌면 흔들린다는 건 아직 양쪽을 모두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랑도 놓치고 싶지 않고 나 자신도 잃고 싶지 않아서, 안정도 필요하지만 진심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삶에서 완벽한 균형을 찾는 건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를 아는 일 아닐까.
어쩌면 삶은 면도날을 완벽하게 건너는 일이 아니라, 그 위에서 계속 균형을 잃고 또 되찾으면서 앞으로 가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p.88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 산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아니면 삶이란 눈 먼 운명의 신이 만들어 내는 비극적인 실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p.363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단정 짓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어. 그 확신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 어쨌든 그것은 그 어떤 술보다도 중독성이 강하고, 그 어떤 사랑보다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또 그 어떤 악덕보다도 강력하고 매혹적이야.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엘리엇은 전 생애를 떠들썩하기만 할 뿐 공허하기 그지없을 파티들과 인간관계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은 것은, 불행히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은 래리의 이야기들은 6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선생님은 대체 래리와 무슨 얘기를 나눴기에, 래리와의 대화를 통해 면도날 책까지 쓸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끝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래서, 엘리엇의 삶의 목적은 결코 남은 건 아무것도 없을 것들이었다면, 래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래리는 마침내 그 답을 찾았을까. 이 책의 마지막이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왜냐면 나도 지금 래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래리의 답을 듣게 된다면 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내일 또 읽어야지.
이 책 너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