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권. 페스트라는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며 의연히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20세기 프랑스 문학이 남긴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2011년 현재까지 외국어 번역을 제외하고 오로지 프랑스어 판만으로 약 500여만 부가 판매되어 <이방인>을 바로 뒤쫓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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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내용 요약
《페스트》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1947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로, 민음사에서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 이 작품은 알제리 오랑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갑작스럽게 닥친 페스트(흑사병)와 그로 인해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다. 이야기는 의사 베르나르 리외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리외는 거리에서 죽은 쥐를 발견하고, 곧이어 환자들이 고열과 종기 증상을 보이며 쓰러진다. 도시 전체가 페스트의 공포에 휩싸이고, 당국은 오랑을 봉쇄한다. 🌍 리외는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동분서
페스트가 사람들에게서 정말 빼앗은 게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당연히 건강과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카뮈가 더 집요하게 들여다본 것은 그보다 조금 다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고 싶다는 욕구, 타인의 죽음에 슬퍼할 수 있는 힘, 심지어 두려워할 수 있는 감각까지. 페스트는 사람의 몸을 죽이기 전에 감정을 조금씩 마모시켰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죽음은 육체의 죽음보다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오랑에 죽은 쥐들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을 때 시민들은 공포에 빠진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죽고, 사랑하는 사람과 갑자기 생이별해야 하는 현실을 누구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견디기 위해 그 비정상에 적응한다. 처음에는 옆집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귀를 기울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비명조차 하루를 구성하는 소음 가운데 하나가 된다. 어제 죽은 사람의 숫자와 오늘 죽은 사람의 숫자가 다르지 않게 느껴지고, 타인의 죽음은 점점 하나의 통계가 되어간다.
그 장면들이 유난히 불편했던 건 그것이 오랑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난이 길어질수록 인간은 반드시 더 서로를 아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삶을 지키는 일에 익숙해진다. 공포가 반복되면 공포조차 일상이 된다. 코로나 때 처음 마스크가 동나고, 당연히 할 수 있던 일들이 하나씩 금지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 예의가 되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어느 순간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재고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하루가 됐다. 페스트 속 인물들의 절망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비정상이 조금씩 정상의 얼굴을 갖게 되는 그 감각만큼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런 세계에서 리유는 이상할 만큼 담담하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영웅적인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살리는 데 거창한 철학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눈앞에 아픈 사람이 있으니 치료하고, 또 다른 환자가 오면 다시 그 사람을 돌본다. 그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리유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영웅이란 대단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할 몫을 계속해내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스트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그런 평범함까지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죽음이 너무 많아지면 한 사람의 죽음을 온전히 슬퍼할 시간조차 사라진다. 그런데도 소설 곳곳에는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작은 흔적들이 남아 있다. 죽은 이들을 실어 나르는 수레를 향해 누군가 몰래 꽃 한 송이를 던지는 장면이 그랬다. 서술자는 페스트의 시대에 사람들이 사랑하는 법을 잊어간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꽃 한 송이에서 사랑이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다.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줄어들었을 뿐, 마음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감정은 죽는 대신 아주 작고 초라한 형태로 숨어 살아남는다.
리유와 타루가 함께 바다에서 수영하는 장면도 그래서 좋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만큼은 두 사람이 의사도, 방역대의 일원도, 페스트에 갇힌 시민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밤바다를 헤엄치는 두 사람이었다. 물론 물에서 나오면 다시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고, 다음 날이면 또 누군가가 죽는다. 그 행복에는 처음부터 끝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삶이 완전히 나아져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한가운데에서도 인간은 잠시 웃고, 사랑하고, 헤엄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견디는 방식도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긴 고통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대신 그 사이사이에 주어진 짧은 평화를 붙잡으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사람은 그랑이었다.
그랑은 페스트가 도시를 집어삼키는 동안에도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의 첫 문장을 고쳐 쓴다. 단어 하나를 바꾸고, 다시 지우고, 문장의 리듬을 고민한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는 몇 달이고 첫 문장 하나를 완성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데 고작 한 문장을 두고 저렇게까지 고민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 문장이 오래전 떠나간 아내 잔느를 향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랑에게 소설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었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놓쳐버린 사람에게 언젠가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건네고 싶다는, 너무 늦은 편지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가 같은 문장을 끝없이 고쳐 쓰는 일은 우스꽝스러운 집착이면서 동시에 사랑이었다. 이미 떠난 사람에게 끝내 닿지 못할지도 모르는 말을 어떻게든 완벽한 문장으로 만들어보려는 노력. 페스트가 모든 관계를 끊어놓는 동안 그랑은 반대로 오래전에 끊어진 관계 하나를 문장으로 다시 이어보려 하고 있었다.
그가 병에 걸린 뒤 원고를 끌어안고 울다가 그것을 태워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유난히 아팠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것은 단순히 실패한 소설을 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잔느에게 끝내 하지 못한 말들, 언젠가는 전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쌓아온 밤들까지 함께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내려놓는 것이 자신의 가장 오래된 미련이라면, 그랑에게 그것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랑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회복한 뒤 다시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카뮈가 그랑에게 다시 펜을 쥐여준 일이 좋았다. 대단한 영웅도 아니고, 특별히 강한 사람도 아닌 그가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느껴졌다. 페스트를 이겨낸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구하는 거대한 승리가 아니라, 한때 포기했던 문장을 다시 써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사랑해보고, 무뎌졌던 마음을 다시 움직여보고, 어제 하던 일을 오늘 다시 시작하는 것. 삶은 그렇게 아주 사소한 방식으로 되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리유는 페스트균이 영원히 죽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숨어 있다가 언젠가 다시 쥐들을 깨워 어떤 행복한 도시로 보낼 수도 있다고. 그래서 <페스트>의 끝은 완전한 승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재난은 끝날 수 있지만 인간이 재난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절망적이지만은 않았던 것은, 페스트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인간 역시 다시 돌볼 수 있고,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다시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인간의 무관심도, 이기심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다시 환자를 돌보고, 누군가는 죽은 사람에게 꽃 한 송이를 던지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넬 문장을 밤새 고쳐 쓴다.
카뮈가 끝내 믿었던 것이 있다면, 어쩌면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거대한 재난을 이겨내는 위대한 인간성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아주 작은 인간다움.
팬데믹을 겪었기 때문에 『페스트』를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습게도 그런 마음을 갖고 읽어서 그런 건지 더더욱 1, 2부는 잘 읽히지 않았다. 분명히 흥미롭게 배경과 인물을 설명하고 있는데 왜 더디게 읽혔는지 모르겠다.
3부 이후부터는 비교적 쉽게 읽혔다. 분량이 가장 짧기도 했고, 페스트의 여파로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지와 등장인물들의 태도 변화가 본격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이 생각났다. 발병이 ‘벌’이라면 ‘죄’는 무엇인가?)
책 뒤 작품 해설이 역시나 감상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왜 익명의 증언으로 서술되었는지, 각 등장인물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라든지. 해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어려운 소설이라는 걸 깨달았다.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무관심한 와중에도 질병 앞에 놓인 이들은 수없이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오랑의 시민들은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페스트에 익숙해져간다. 바로 옆집에서 비명이 들려도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제 삶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이 불편했던 건, 그게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포가 일상화되는 순간 연대는 생각보다 훨씬 쉽게 흐릿해지고, 인간은 너무도 쉽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쪽으로 미끄러진다는 걸 코로나를 겪으면서 나도 어렴풋이 알았다.
리유의 마지막 말도 오래 남았다. 페스트는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 일상의 밑바닥에 잠복해 있을 뿐이라고. 코로나 이후의 삶이 그 말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마냥 소설 속 이야기로 읽히지 않았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인물은 그랑이었다. 그는 페스트가 도시를 집어삼키는 동안에도 매일 밤 책상 앞에 앉아 오래전 떠나간 아내 잔느에게 바치는 소설의 첫 문장을 고쳐 썼다. 언젠가 완성해서 그녀에게 내밀겠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처음엔 그 반복이 좀 순진해 보였는데, 읽어갈수록 그게 페스트가 모든 것을 앗아가는 와중에도 사랑만큼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조용한 저항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가 결국 원고를 끌어안고 울다가 태워달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건 원고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오래된 사랑의 형태를 내려놓는 거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랑은 살아남는다. 소설에서 페스트에 걸렸다가 완치되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카뮈가 그랑을 살려낸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재난 앞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는 것, 그 사소해 보이는 애정이 결국 사람을 버티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는 것, 페스트가 말하고 싶었던 게 바로 그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