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닷컴 종합 1위, 「뉴욕타임스」 논픽션 1위, 빌 게이츠와 소설가 김훈이 추천한 화제의 책. 빈곤과 무너져가는 가족, 그 어둠 속에서 일어선 한 청년의 진솔한 성장기. '힐빌리'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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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힐빌리의 노래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내용 요약
J. 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는 2017년 흐름출판에서 출간된 회고록으로, 미국 러스트벨트 지역 출신인 저자가 애팔래치아의 힐빌리 문화를 배경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진솔하게 기록한 작품이다. 📖 저자는 오하이오주 미들타운과 켄터키주 잭슨을 오가며 자랐다. 이 지역은 한때 번영했던 공업 지대였으나, 제조업의 쇠퇴로 경제적·사회적 빈곤이 만연한 곳이다. 책은 밴스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약물 중독에 빠진 어머니
#힐빌리의노래
미국 부통령 J.D. 밴스의 자서전
성공담이 아니라
육체노동자들이 느끼는 좌절감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생각났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소외된 계층의 어려움은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의 목소리❜가 널리 퍼져나가길,
어려움 속에 있는 분은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길.
#추천합니다#JD밴스#미국부통령#자서전#회고록#2024년193번째책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을 구입했던 건, 빌 게이츠의 도서 목록 덕분이었다. 매년 발표되는 빌 게이츠의 목록 중 재밌어 보이는 몇 권은 따라 사 본다. 문제는 바로 읽지 않고 묵힌다는 점.ㅎㅎ(이 습관은 언제쯤에나 고칠 수 있을런지..) 하여간~ 그렇게 책장 속에 묻혀 있던 책이 드디어 빛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 이유는... 한 2~3주 전부터 갑자기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뜨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응? 왜? 이제서? 갑자기?" 하며 궁금해 하다가 비로소 알게 됐다. 작가 J. D. 밴스가 트럼프 진영의 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을. 하... 진짜 이상했다. 내가 알기론 <힐빌리의 노래>는 트럽프의 당선 당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그 현상을 가장 잘 파악하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문화, 사회적 배경을 잘 드러낸 책이 <힐빌리의 노래>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 J.D. 밴스는 트럼프를 공화당의 쓰레기라며 가장 많이 비웃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어째서, 어떤 이유로 이 사람은 가장 끝에서 가장 끝으로 이동한 걸까. 궁금해졌다.
각종 미디어에서 소개한 대로 <힐빌리의 노래>는 애팔래치아 지역 중 "힐빌리"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지역의 특수성을 설명한다. 한 가족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가 난무하지만 저자에 의하면 그런 이야기들이 그 지역의 모든 이웃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마약, 다혼, 불성실, 알코올 중독, 10대 임신 등 끊임없는 사고는 사고를 낳고 아이들은 제대로 돌봐지지 않으며 그렇게 자란 아이는 부모와 같은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저자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많은 형제들 중 진짜 친형제는 없다. 법적 아버지와 생물학적 아버지가 다르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아버지라는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고 그때마다 이사와 전학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어머니는 자신은 버린 인생일망정 아이들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어떤 이유든 책을 많이 읽게 했다. 또한 할머니, 할아버지는 끝까지 아이들 곁에 남아 무한의 지지와 올바른 길을 위한 교육에 대한 열정을 쏟아붓는다. 그렇기에 저자는 그곳에서 탈출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나름 성공할 수 있었다.
책에선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는 않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었던 건, 이 지역의 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 8조 프로그램(정부에서 지원하는 정책)을 통해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주를 이루는 견해는 수많은 백인 노동자가 내가 딜먼에서 본 것과 똑같은 광경을 목격하고 분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 1970년대 누구의 말마따라 복지 제도에 기대 놀고 먹는 사람들이 "정부에서 돈을 받으며 사회를 비웃는다!! 우리 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매일 일터에 나간다는 이유로 조롱받고 있다"라는 인식이 백인 노동 계층 사이에 팽배해지면서 공화당의 대선 후보 리처드 닉슨을 지지하기 시작했다"...234-235) 이곳 사람들 사이에 팽배한 노력 부족, 남 탓만 하고 더 나아지려고 하지 않는 그 습성을 지적한다.
솔직히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도 어째서 이 지역, 이 계층 사람들이 트럼프를 왜 지지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너무 정치에 무지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트럼프는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반대편에 있던 J.D.밴스의 변심이 또한 충격이다. 이미 한번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바꿔놓은 것이 없어 연임이 되지 않았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닐까. 무엇을 보고 그는 그를 지지하는가. 역시 정치는 어렵다.
#도서리뷰,#힐빌리의노래,#2017,#JD밴스,#흐름출판,#전자책,#책스타그램
저자는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 D. 밴스의 책
출판이 2017년이니 지금의 부통령 후보나 상원의원 시절보다 예전에 출판 되었고, 출판 당시 베스트셀러 등극
힐빌리 : 러스트벨트 지역의 블루컬러 중심의 백인 하층민을 가르키는 표현
힐빌리 출신인 저자는 잭슨 이라는 시골동네를 배경으로 가족 (조부모, 부모, 형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조부모가 이주한 미들타운에서의 생활과 성장해 나가면서 주변도시들의 쇄락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도시 쇄락의 영향으로 망가져(마약, 10대 출산 등) 가는 가족들과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마치 사회과학 실험보고서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몇 가지 기억 나는 것
1. 고등학교 시절 사회정책과 근로빈곤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던 부분
2. 푸드스탬프 프로그램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 하는 부분
3. 미국 선거에서 스윙스테이트 주민들의 성향은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한다고 주장하는 부분
4. 예일대 로스쿨 진학후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인적 네트워크) 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부분
5. 백인인 힐빌리들 역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있다는 부분
Q.미들타운 이주 힐빌리들의 최대치는 중산층이 목표였을까?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에서 채사장은 보수를 지지하는 노동자를 '어리석다'고 표현했고 근 몇 년 간 진보 정당은 '어리석은' 노동자들을 '계도'하지 못했다. 정부의 지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면서 '복지 여왕'들의 나태에 치를 떠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나는 억압과 소외가 사라진 세계를 꿈꾸는 진보주의자인데, 그래서 이런 물음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를 어리석다고 말하는가? 국가는 '그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 밴스는 가난한 백인 노동자 출신으로서 지금의 '큰 정부'가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다고 항변했고 뭇사람은 그의 주장이 보수 진영에게 유리하게 인용될 것을 우려한다. 확실히 그의 주장엔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게 왜 문제란 말인가? 만약 보수주의가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 더 잘 기여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나는 언제든지 보수를 지지할 것이다. 물론 밴스는 틀렸을 수 있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보다 어느 모로나 더 어리석지 않다는 말은 입바른 소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더 어리석은지를 항상 잠정적으로,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다양한 변수를 이야기하지만 핵심은 지리적, 문화적, (그리고 특히) 가정 환경으로 귀결된다. 가난한 동네는 물질적 빈곤만 대물림하지 않는다. 마약과 성을 탐닉하는 부모, 접시가 날아다니는 주방, 학습된 무기력, 약속이나 미래에 대한 투자는 무용한 것이라는 인식, 공부는 '계집애'스럽다는 편견과 마초이즘, '스파클링 워터'가 무엇인지부터 장학금 수혜 방법까지에 이르는 정보를 제공할 사회적 자본의 부재를 밴스는 가난과 함께 물려받았다. 그는 그와 같은 환경에서 삶의 중요한 순간에 적절한 방식의 정서적 지지를 보내 준 사람들이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시인한다. 관료주의적이고 체계적인 감시 시스템은 그를 돕지 못했다. 사회복지사는 실질적 보호자인 조부모를 무시하고 어린 밴스를 위탁 가정으로 보내려 했고 밴스는 사랑하는 엄마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모든 게 괜찮다고 거짓말해야 했다. 마약 중독자가 어린아이에게는 잃고 싶지 않은 엄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쪽과 모르는 쪽 중 어느 쪽이 더 어리석은가. 밴스의 언어로 듣고, 말하려는 제도의 노력은 충분했는가?
억압을 중층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담론이 확장하면서, 진보는 점점 더 '엘리트'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인종, 난민, 젠더, 기후와 같이 세분화된 의제들이 진보의 외연을 넓히는 동안 러스트벨트의 빈부 격차는 꾸준히 커져 왔다. 나는 신좌파가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힐빌리'의 삶을 두껍게 읽자는 주장부터가 애초에 신좌파적 사유에서 빌려 온 것이다. 그러나 '신좌파'라는 용어가 암시하는 것처럼 '구좌파'의 의제들이 '한때' 진보를 추동했던 낡은 담론으로 여겨져선 안 된다. 가난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현재이다. 단지 가난이 물질적 빈곤으로서 존재할 뿐 아니라 오바마의 '매끄러운' 연설에서 느껴지는 소외감의 형태로서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알게 되었을 뿐이다. 밴스의 말대로 미국이 이미 빈자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사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부가 준 돈으로 술을 사 마시는 사람들이 이른바 시스템의 개선만으로 새 삶을 살게 되진 못하리라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진보의 책무 중 하나는 '그들'의 언어를 독해해 내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기를 연습하는 일일 것이다.
밴스가 '운'이라 표현한 '애정'은 산업 사회 이래로 '가사화'되면서 '비가시화'되었고, '애정 결핍'과 같은 경험은 치유학 패러다임의 지배 하에 심리학적 문제로 밀려났다. 그래서 나는 <<힐빌리의 노래>>를, 애정의 불평등이 직조하는 억압을 묵과해 온 현실을 고발하는 책으로 전유한다. 사랑은 이제 사회적 문제가 되어야 한다. 가정이 사적인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면 우리에겐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사랑의 장소가 필요하다. 어쩌면 '진보의 실패'를 돌파할 길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